[고병수의 가슴앓이]
저소득층 건강보험료 절반으로 깎아준다?
생색내기용 보건복지 정책들
2009.06.12 ㅣ 고병수/새사연 이사

정부가 건강보험료를 한 달에 1만 원 이하로 내고 있는 저소득층에 대해서 건강보험료를 50퍼센트나 깎아준다고 발표했다. 내년부터 한다는 게 아니라 바로 7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우니 발 빠르게, 시급히 복지 정책을 시행하는구나 생각했다. 하긴 이럴 때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저소득층이니 정부가 잘 하고 있군하고 마음이 놓였다.

드디어 복지정책에 눈을 뜬 정부?

1만 원의 절반을 깎으면 5천 원이다. 씀씀이가 좀생이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정부가 그 분들에게 얼마라도 줄여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긍정적으로 보기로 했다. 이럴 때 칭찬을 해줘야 더 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기분도 잠시. 나는 책상 위에 있는 빈 종이에다 간단한 계산을 해봤다.

건강보험료를 1만 원 이하로 내면서 이번 혜택을 받을 사람이 대략 40만 명이라고 할 때 ‘40만 * 5000원’이고 계산하면 200억 원.

오홋, 정부가 드디어 큰 맘 먹고 저소득층 지원을 하는구나 싶었다. 작년에는 복지 예산을 왕창 깎아버리더니 말이다. 이제 슬슬 복지, 보건의료 정책이 바뀌려나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보기도 했다.

어, 숫자가 이상한데? 계산착오다. 200억 원이 아니라 20억 원이다.

잘못 계산한 나도 창피했지만 갓난아이 오줌만큼 지원하면서 생색을 내는 우리 정부가 더 민망스러웠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저소득층의 건강보험료 지원 확대라는 거창한 말을 해가며 ‘보험료 경감고시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6월 12일 정부 관계자들이 발표했다. 그것도 2009년 7월 1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1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한다고 한다.

최근 생색내기 보건복지 뉴스 몇 가지

인터넷포털이나 신문뉴스를 검색해 보니 다른 이슈들도 올라있다.

‘오는 7월부터 만 1세 이하의 저소득층 아동을 키우는 가정에 월 10만 원의 양육수당 지급’
‘국회, 지난 4월 기초수급자를 지원하는 의료급여 예산 540억 원 삭감’
‘의료급여 수급권자 1종이 2종으로 둔갑’

1세 이하의 저소득층 아동에 월 10만 원을 준다는데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왜 하필 1세 미만만 주냐 이거다. 한 살 이전까지는 생활이 힘들지만 그 나이 지나면 가족들의 생활이 펴는가? 그렇게 생각하는가?

국회가 이번 4월에 의료급여 예산을 깎았다고 보도한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미 지난 4월에 의료급여 수급권자수를 줄일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때 예산을 만지작거리며 깎았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의료급여 대상자 숫자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뉴스를 보면 보건복지가족부의 해명이 나온다. 노동 능력이 있는데도 의료급여 1종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있고, 병원에서도 허위로 진단서를 떼어준다는 것이다.

나는 서울에 있을 때 의료급여 환자들을 많이 진료했다. 어느 지역보다 어려운 분들이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허위로 진단서를 가져가는 분들은 아주 극소수이다. 설사 약간 허위로 진단서를 받아간다고 해도 그런 분들 대부분은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다. 더 어렵고, 조금 덜 어려운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한 것을 서류 하나 갖고 평가하고 차이를 두려는 정부 담당자나 한나라당이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시소 태우다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보건복지 정책들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어릴적 시소에서 떨어진 기억을 되살리게 되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가 ‘꽝’ 하고 떨어져버린 기억. 도대체 힘겨운 국민들을 얼마나 더 띄우는 척 하다가 패대기치려는 것인지.

한나라당과 정부는 항상 뭘 해주는 척 하면서 뒤로는 이미 더 많은 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이번 기사들을 읽으면서도 역시나 그랬구나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욕먹기는 싫은 모양이다. 조삼모사 작전을 펼치면 덜 욕먹을 것 같은가 보다.

의료급여 대상자수를 줄일 것이 아니라 더 늘려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게 옳은 정책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은 기획재정부와 행전안전부 발표만 봐도 매월 1만 명 이상씩 늘고 있다고 한다. 기초수급자 뿐만 아니라 차상위계층도 예측보다 크게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들을 지원하는 기준은 엄격히 하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고, 그럴 예산이 부족하다고 한다.

4대강 정비 사업에 쏟아부을 국가예산 22조 원, 아니 30조 원의 1/10만 써도 충분히 지원이 가능할 일이다. 오히려 그 돈을 보건의료나 복지 정책에 써서 사회복지 인프라를 늘리면 일자리도 탄탄해지고, 이미 만들어진 보건복지 인프라를 통해 우리도 복지 선진국으로 갈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아래 사례는 한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과연 저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이름만 빼고 가감없이 올린다).

“부산에 살고 있는 OOO입니다. 부인과 두 딸과 같이 생활하고 있는데요. 저희는 기초수급자 2급입니다. 근데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인하여 후유증이 심해서 어지럽고 일하다보면 가슴이 막히고 큰 돌로 눌러둔 것처럼 답답합니다. 한 달에 월급은 60만 원 정도이고, 정부에서 나오는 돈은 28만 원인데요, 병원비 내고 생활비 하면 모잘라요. 혹시 1급으로 바꿀 방법이 없나요? 방법 좀 가르쳐주셔여. 동사무소에서는 암이 걸려야 1급으로 바꿀 수 있다 하더군요. 도와주셔요. (2009. 05. 21)”

“안녕 하세요. 저는 최근에 이사를 갔는데 이사하고 전입신고를 해서 보니 의료급여 1종이던 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2종이 되버렸는데 그건 무슨 이유입니까? 아시는 분 답 좀 부탁드립니다. 금액의 큰 차이라기 보다 사연을 알 수 없군요. 저는 지체장애 3급이고, 아내는 56세로 당뇨환자이고, 작년8월에 심장혈관확장수술을 받았는데요, 장애등록을 하려니까 담당의사가 1년이 지나고 올 8월에 소견서를 써준다길래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저절로 2종으로 되버렸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2009.6.10)”

* 의료급여의 수급권자는 1종과 2종으로 나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권자 중 근로능력이 없는 자 등을 1종 수급권자로 하고, 1종 수급권자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자를 2종 수급권자로 하고 있다. 1종 수급권자에게는 병원비의 전부, 2종 수급권자에게는 일부 본인부담금을 내게 한다.